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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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詩

자정의 희망곡

수평선다방의 시 2014. 3. 3. 15:11

 

  자정의 희망곡

 

 

                             김 은 경

 

 

턴테이블은 옛날에 고장 났는데

어떤 악보도 나는 없는데

이어지는 밤의 오페라는 누구의 것

 

너의 검지는 하필 퉁퉁 부어 있고

서쪽으로 느리게 걷는 취미

걸어도 걸어도 채울 수 없는 허증

입병 든 고양이가 굶기 일쑤면서도

발정 나서 그토록 달아오르는 일

 

스무 살 엄마는 꼭 한 번 가져본

꽃무늬 스커트를 홀라당 잃어먹고 종일을 울었다

 

목숨보다 중한 것들이

크레파스처럼 널려 있을 거야

네 귀의 악마는 속삭이고

 

축축한 옷감들이 숨 붙은 수족처럼 구는 시간을 틈타

세탁기가 멈춘다

그에게도 울음 멎을 핑계는 필요하니까,

묵은쌀에 곰팡이를 들여다보다

저녁밥을 굶기로 했다

 

빙그르 빙그르르르

어제의 눈부심, 너덜너덜한 치맛자락이

사력을 다해 말라가는 동안

이미 네 손가락 잊었다, 주먹에 쥐고 있던 것을

언제 놓아버렸지?

주인 없는 죽음이 문지방을 왔다 갔다

결별의 순간에도 음악은 가장 우아한 발작이다

 

밤의 오페라 꺼지지 않는다

 

 

(시집불량 젤리44쪽, 삶창,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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