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최정례 _ 국 본문

꽃처럼 아픈 詩

최정례 _ 국

수평선다방의 시 2021. 1. 27. 15:06

 

                                                 최정례

 

외국에 나와서 제일 그리운 것은 국이다

국물을 떠먹으면서 멀리멀리

집으로 떠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너무 추워서 양파 수프를 시켰는데

쟁반만 한 대접에 가득 수프가 나왔다

김도 나지 않으면서 뜨거워 혀를 데었다

너무 짜고 느끼하고

되직해 먹을 수가 없었다

몇 숟가락 못 뜨고 손들었다

 

국이란 흘러가라고 있는 것이다

후후 불며 먹는 동안 뜨거운 내 집으로

흘러가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내 집은 어디에 있나

내 집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

왜 여기 나와 헤매고 있나

 

여행이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맘에 드는 곳에 고여 있는 것이다

거기 머물며 내 집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 집이 어디 있는지 과연 내 집이

어디 있기는 있는 것인지

국을 그리워하며 떠내려가보는 것이다

 

(『빛그물』, 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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