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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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아픈 詩

황병승 _ 그리고 계속되는 밤

수평선다방의 시 2010. 1. 27. 12:38

 

 

  그리고 계속되는 밤

 

                         황 병 승

 

알코홀릭alcoholic, 그것은 연약한 한 존재가 자신을 열정적으로 위로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빠질 때까지, 더 나빠질 때까지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존재들, 끝없이 질문하는 존재들과도 같이, 지구 바깥에, 허공에 집을 짓는 사람들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때는 나도 너처럼 말수가 적었고

감당할 수 없는 질문들엔 얼굴을 붉혔다

험한 말들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가끔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었어…… 대신 호주머니에 돈이 좀 있을 땐

꿈꾸는 약을 샀지, 매일 밤 계속될 것만 같은 아름다운 꿈들

돌이켜보면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던 것 같군

아름답다는 건 때로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어떤 결심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종교를 갖는다는 것, 찬물로 세수를 해라 이 엄마가 죽도록 때려줄 테다

 

공허해질 때까지 더없이 공허해질 때까지

 

언젠가는 밤새도록 책이란 것도 읽었지

너처럼 책 속에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고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짐승처럼

종이 속에 묻혀 조금 울기도 했지

그래 손등은 보드라웠고 뺨은 희었다

아! 뺨이 참 희었는데…… 너는 믿지 못하겠지만

그때도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저 언제나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내가 나의 부모였으니까

 

위이트리스waitress, 네가 먹을 음식과 네가 먹다 남긴 음식을 치워주겠다는 뜻이다

 

나빠질 때까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때까지

 

(『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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