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김소연 _ 로컬 버스 본문

꽃처럼 아픈 詩

김소연 _ 로컬 버스

수평선다방의 시 2010. 1. 26. 11:53

 

 로컬 버스

 —비카네르에서 자이살메르까지*

 

                    김 소 연

 

버스를 한번 내릴 때마다

환생을 나는 하고 있다

 

몸 안 깊은 동굴에 머물던 짐승들이

한 마리씩 앞 정류장에서 먼저들 내리고

나는 한 정류장을 꼭 더 가게 된다

 

먼저 내린 짐승 하나가

꾸덕꾸덕 고개를 구부리며 길 없는 언덕으로 사라질 때마다

태양은 칠흑을 천천히 지워버린다

알현을 끝낸 신하처럼 어둠은

뒤로 걸어 허리를 숙인 채 공손히 사라진다

세워둔 배낭처럼 나는 허술하게

잠도 없고 세수도 없이 먼지 옷만 차려입고

버스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막 한가운데의 바오밥나무거나

머리에 물 양동이 이고 집으로 가는 불가촉천민이거나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코브라이거나

잠시 빛 뒤로 숨는 별 하나다

 

운전사가 버스를 세워놓고 갓길에서 노닥거릴 때

귀가 간지러워 새끼손가락을 귓구멍에 넣느라

이번 생도 잠시 걸음을 멈춘다

 

  * 비카네르Bikaner, 자이살메르Jaisalmer : 인도 라자스탄 주 타르사막에 있는

    도시 이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