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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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_ 내 앞에 있는 사람

수평선다방의 시 2015. 8. 19. 18:26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 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_  이병률, 내 앞에 있는 사람』 가운데.(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