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허연 _ 사는 일 본문

꽃처럼 아픈 詩

허연 _ 사는 일

수평선다방의 시 2012. 9. 24. 16:12

 

 

    사는 일

 

                     허  연

  

술 취해 집을 뛰쳐나간 아버지와

전화통 붙들고 싸운 날

회사에선 시말서를 쓴다.

 

공교로운 것이 아니라 그게 사는 거다.

때 맞춰 창밖 남산에 눈이 내리거나

옛 애인이 오랜만에 예수 믿으라는 전화를 걸어온다면

판단 안 서는 그 상황은 차라리 아름답다.

 

가장 축약된 문장으로 비겁한 시말서를 쓰고

삼거리 부대찌개를 먹고

담배를 반쯤 피우다 말고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누워 있는 불상들이 일어서는 것만큼

삶이 호쾌해지는 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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