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박성우 _ 아직은 연두 본문

꽃처럼 아픈 詩

박성우 _ 아직은 연두

수평선다방의 시 2012. 10. 17. 16:44

 

  아직은 연두

 

                     박 성 우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배추 잎을 신나게 갉아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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