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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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아픈 詩

허홍구 _ 아지매는 할매 되고

수평선다방의 시 2009. 9. 11. 12:28

 

 

   아지매는 할매 되고


                    허 홍 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 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 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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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술 좀 마셨다 하는 사람들은 아마 기억할 것이다.

염매시장 골목 속에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던

'곡주사'라는 이름의 술집,

막걸리가 있었고, 파마 머리 주모가 있었고,

별과 달이 잘 보이는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도 있었던....

 

거기서 맞이하던 첫눈이 기억난다.

막걸리 냄새 가득한 입으로 첫눈을 받아먹고도

뭔가 계속 허기지기만 하던 스무 살의 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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