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박후기 _ 사랑 본문

꽃처럼 아픈 詩

박후기 _ 사랑

수평선다방의 시 2009. 9. 24. 16:41

  

 

 

 

  사랑

  글렌 굴드


                 박 후 기


침묵은

말 없는 거짓말,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살아야 하는 여자와

살고 싶은 여자가 다른 것은

연주와 감상의

차이 같은 것

건반 위의 흑백처럼

운명은 반음이

엇갈릴 뿐이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

다시 듣고 싶은

당신의 거짓말이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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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시집 제목에 여러 번 눈길이 간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시인의 말’을 통해서 그는 이렇듯 쓰고 있다.

“그을음, 그것은 이 시집을 펼칠 때 누구나 보게 될 덧없는 내 자상(自傷)의 흔적이다.”

마치 동공이 텅 빈 것 같았던 그의 두 눈을 떠올린다.

얼마나 아프게 사랑하면 이런 시를 쓰는 것일까.

사랑은 얼마나 독한 병(病)이어서

아직도 여전히 시인은 ‘당신의 거짓말을 다시 듣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일까.

문득 생각한다. 세계의 모든 시인은

사랑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잔인하게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함께 살고 싶었으나, 함께 살 수 없었던

모든 실패한 연인들을 위한 노래를

사십대의 시인은 쓸쓸하고도 담담하게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