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이장욱 _ 오해 본문

꽃처럼 아픈 詩

이장욱 _ 오해

수평선다방의 시 2010. 4. 29. 17:52

 

                                                 

   오해

 

                 이 장 욱

 

나는 오해될 것이다. 너에게도

바람에게도

달력에게도.

 

나는 오해될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신호등 앞에서

기나긴 터널을 뚫고 지금 막 지상으로 나온

전철 안에서

결국 나는

나를 비껴갈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이 내 생각을 휘감아

반대편 창문으로 몰려가는데

내 생각 안에 있던 너와

바람과

용의자와

국제면 하단의 보트피플들이 강물 위에 점점이 빛나는데,

 

너와 바람과 햇빛이 잡지 못한 나는

오전 여덟 시 순환선의 속도 안에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고정되는 중.

일생을 오해받는 자들

고개를 기울인 채

다른 세상을 떠돌고 있다.

 

누군가 내 짧은 꿈 속에

가볍게

손을 집어넣는다.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 지성사, 2006)

 

  

 

   개구리들이 비처럼 내렸다.
   폴 오스터를 위한 컴필레이션, 잘 듣고 있어요. 아침에는 여행을 떠난답니다. 고마워요.
   심증만으로 하루를 건너가는 예수를 상상하도록 하자. 그도 자기를 믿고 싶었을 거야. 간절히.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비슷한 얼굴일 뿐인데, 전 오늘 당신을 처음 봐요. 신기해라.
   주체란 실체 내부의 자기 부적합성, 실체 내부에 그어져 지워지지 않는 빗금에 다름 아니다.
아아, 지겨워.
   아님 말고: 박찬욱의 가훈.
   귀국하는 권희로씨의 경호를 위한 경찰의 작전명: “그 얼굴에 햇살.”
   9·11 이후 미국이 벌인 대테러 작전명: “무한 정의.”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는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하품하는 아가리의 이미지.

   빠끔히 입 벌리고 있는, 단 하나의 공허.
   하지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총체성의 불가능함을 반영하는 총체성. 악무한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한 다람쥐의 고투.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한 옥타브 낮춰서 부르기로 하자. 밥 딜런 풍으로.

   우리 모두 입을 벌리고. 하나. 둘. 셋―
   돈을 벌고 싶어.
   개구리들이 비처럼 내리고 허공에 온 세계가 무지개처럼 피어났다. 화사했다.
   안녕. 잘 지냈어요?
   가을이 오면, 그 가을이 다시 오면
   우리는 손을 잡고 우리의 오래된 해변을 걷기로 해요.

  

   (시집 뒤표지에 시인이 쓴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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