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안미옥 _ 기시감 본문

꽃처럼 아픈 詩

안미옥 _ 기시감

수평선다방의 시 2017. 11. 29. 09:49

 

 

 

      기시감

 

                           안 미 옥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자주 봤던 사람 같다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 같다
   흩어진 미래의 파편처럼
   유행처럼
   심연으로 심연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디선가 했던 생각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말 같다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목소리 같다
   입을 꾹 다물고
   누구에게 무엇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을 보았을 때
   입구에 있는 문을 열지 못하고
   아주 오랫동안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악몽이라고 하더라도 차라리
   꿈속으로 걸어 들어가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흐트러트리고 싶었다
   몇 번을 돌려 본 영화인데
   화가 나는 장면에선 어김없이 화가 났다
   투명한 돌로 태어났구나
   한 번도 진심을 가져본 적 없는
   얼굴
   벽을 부수려는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움켜쥐었던 것
   그런 돌로는 아무리 던져도
   금이 가지 않는다
   물컵에 가득 담긴 얼음
   누군가 꽉 쥐었던 주먹 같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의 눈동자
   내가 지른 비명은
   온통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지면
   흰자위가 붉게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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