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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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詩

일요일의 상상력

수평선다방의 시 2016. 1. 11. 12:06

 

 

      일요일의 상상력 

 

                                     김 은 경


밭마다 꽂힌 초고압 송전탑이 외계인의 비밀기지라면

24시 켜진 네온이 그들의 구조 사인이라면

청량리 떡전교에서 휘청휘청 겨우 나를 비껴가는

리어카가 실은 춤을 추고 있는 거라면

허공이 토해낸 은행알들이

엄마의 젖꼭지라면, 흐느낌이 올 때마다 그녀

한쪽 가슴 걷어 올려 뽀얀 즙 먹여준다면

 

사방에 숨은 맨홀들이 침대라면

시립공원 녹슨 그네가

잠 못 드는 한 사람을 위한 일인용 안락의자라면

 

오늘이 어제라면

 

겨울나무에 휘감긴 전구알들이 긴 밤 굽어살피는

신의 눈동자라면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달콤하리라

조금은 덜 서운하리라

 

월요일이 오고

장례식에 가고

 

밤새 덮고 있던 이불을 누군가 거두어 가고

 

시시콜콜 병()이 자라고

어제 받은 꽃이 비록 오늘

시들어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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