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허수경 _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혔던 순간이... 본문

꽃처럼 아픈 詩

허수경 _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혔던 순간이...

수평선다방의 시 2009. 10. 1. 12:38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혔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허 수 경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밀려오는 바람 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혔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끔벅거리며
  바람 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 들며 중얼거리네

 

  당신,
  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이었어
  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 드는 양 나는 중얼거리네

 

  당신,
  우린 너무 젊은 연인이었어
  우리는 너무 어린 죽음이었어

 

        (계간 『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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