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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김중일 _ 밀주 본문
밀주
김 중 일
단 한 번 우리는 술잔을 부딪쳤고 비웠고 멀리 던져 깨버렸다. 여독 속에 내 무릎을 훔쳐 베고 잠든 너의 두 눈은 길고 아름다운 속눈썹에 덮여 있다. 꿈을 꾸고 있다는 건 꿈을 빌리고 있다는 것. 너의 감은 눈. 감은 눈은 달빛에 깊이 찔린 상처 같다. 너의 긴 속눈썹은 너라는 하얀 주머니를 급기야 꿰맨 자국이다. 감은 눈의 너. 지금 여기 내 무릎을 벤 너라는 주머니 속에는 나와 같은 부피의 죽음이 밀주(密酒)처럼 가득하다. 나는 누가 볼까봐 황급히 너의 눈을 두 손으로 꼭 틀어막았다. 내 손바닥의 수면 아래서 노오란 꿈들이 치어처럼 일렁이는 감은 눈으로 너는 우리가 기대앉은 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흔들리는 건 나무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건 바람이 기억한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옆을 돌아봤을 때 번번이 거기에 없는 것은 그냥 이제 없는 것이다. 내 무릎을 베던 너는 내 무릎을 베어 낡은 베개처럼 옆구리에 끼고 갔다. 잠의 노점상 같은 너의 침대로 더 깊은 잠을 빌리러 갔다. 너의 눈에 가만히 입술을 대고 너의 이름을 불렀다. 새파란 밀밭에서. 너는 혼자 비어가는 술병처럼 넘어졌다. 경전을 베듯 무릎을 베었다. 아그니에서 수리아까지 미트라에서 인드라까지 오랜 방문이었다. 밤하늘 멀리 우리를 메모해둔 휘파람들은 사라졌다. 밀밭의 까마귀 떼가 물고 갔다. 호주머니를 뒤집자 작은 돌멩이처럼 툭 떨어지던 불과 태양, 맹약과 용기 등의 낱말들. 그 잿빛 낱말들을 하나하나 가만히 올려보던 취한 입술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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