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박소란 _ 알 본문

꽃처럼 아픈 詩

박소란 _ 알

수평선다방의 시 2024. 8. 27. 10:28

 

                           박 소 란

 

 

눈앞에 거미가 줄을 쳐요

죽으려 해요 목을 매려 해요

나는 말리지 않아요

 

간밤 모기는 몰라보게 뭉개져서 피로 범벅된 채 벽에 우그러져서

나 좀 봐봐 그러고 있어요

 

결국엔 다 말라 죽거나 밟혀 죽겠지, 허리가 잘린 지렁이의 말

사력으로 꿈틀대면서

투명한 팔다리를 허우적대면서

 

재난영화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땅을 쪼개고 마른하늘을 찢고

몹시 극적으로

쏟아지는 거예요 비처럼 억수처럼

 

나는 밟는 거예요 그 물컹한 몸을, 으윽 어디가 고장 난 듯 수시로 멈칫대면서

 

골목을 뒹구는 과자 봉지는 얼마나 위험한지

납작한 비둘기가 푸드덕 깃을 치며 날아오르는 마술

 

나는 좋아하지 않아요

 

도망칩시다 어서 무너지는 건물과 추락하는 자동차로부터

마구 기어 나오는 좀비들

 

개천을 따라 헤엄치다가 무섭게 돌진하다가

커다란 입을 벌리는 거예요 나만 보면

밥 줘 밥 줘 그러는 거예요

 

(『수옥』,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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