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강경희 평론가 _ 김안녕 시 ‘영원한 나라에서’ _ ‘그대’를 부르니 ‘오디’가 떨어진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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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평론가 _ 김안녕 시 ‘영원한 나라에서’ _ ‘그대’를 부르니 ‘오디’가 떨어진다

수평선다방의 시 2024. 4. 5. 09:34

[강경희 평론가의 詩라는 마음]‘그대’를 부르니 ‘오디’가 떨어진다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알티케이뉴스 (rightknow.co.kr)

  •  2024.04.04 
 

 

어느 인디언 부족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그대라 부른다
숨 붙어 있는 기린과 코끼리 지렁이와 거미
찔레나무 발에 차이는 돌멩이

 

그대라고 호명하면 
없는 그대가 멀찍이 사라진 그대가
곁인 것 같다 살아 있는 것 같다

 

기척처럼 기침처럼
받아 적은 말들이 이렇게 나로 남아 있다

 

붉어진 두 눈이 세상에 그득해서

 

산수유가 익는다
끝끝내 오디가 떨어진다

- 김안녕, 「영원한 나라에서」 전문

 

‘그대’라는 말은 참 다정합니다. ‘그대’라 부르면 누구라도 가까워질 듯하네요. 당신은 누구에게 ‘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나요?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아끼고 좋아하는 존재겠지요.

“어느 인디언 부족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그대라 부른다”고 합니다. “숨 붙어 있는 기린과 코끼리 지렁이와 거미”가 ‘그대’로 불리지요. 동물만이 아닙니다. “찔레나무” “발에 차이는 돌멩이”까지 모두 ‘그대’입니다. 작아도 커도 그대입니다. 뾰족해도 납작해도 그대이지요. 아프거나 슬프거나 웃기거나 망가져도 그대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모두 ‘그대’입니다.

김안녕 시인의「영원한 나라에서」는 “그대”라는 이름 앞으로 우리를 불러세웁니다. 입술을 떼어 첫 말을 배우는 아기처럼, 어느새 우리도 코끼리와 돌멩이를 지렁이와 찔레나무를 “그대”라고 가만히 불러봅니다. 그러면 마치 그대가 나를 찾아올 것 같습니다.

인디언 포타와토미족은 식물과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부족에게 나무는 스승이라고 합니다. 식물생태학자 로빈 윌 키머러는 나무의 대화가 나무를 살린다는 인디언 조상들의 말을 사랑합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뭉쳐서 끝까지 살아남는 ‘피칸나무’(피칸히커리나무 Carya illinoinensis)의 생존력은 과학자가 온전히 밝히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 인디언들은 이 나무의 생존비결을 나무가 소집하고 대화하는 ‘피칸 회의’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강경희 문학평론가 · 갤러리지지향 대표

 

서로를 부르는 일은 존재의 명령입니다. “호명”은 “호출”이기도 합니다. 상대를 찾는 일입니다. “그대”라 부르면 ‘네’라고 응답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느 인디언 부족”처럼 우리에게 자연을 닮은 입술이 있다면, 모든 그대들과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시인 김안녕도 “그대”를 부릅니다. 그런데 “없는 그대” “멀찍이 사라진” 그대입니다. 부재와 상실, 이별과 죽음입니다. 없는 이를 어떻게 곁에 데려다 놓을 수 있을까요? “그대”라고 호명하면 “나”를 찾아올까요? 부재한 자를 부르는 호명은 애처롭고 간절합니다. 그래서 “붉어진 두 눈”으로 그대를 부르는 시인의 목소리는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산수유”와 “오디”의 붉고 까만 열매는 어쩌면 나를 찾아온 그대의 대답일 수도 있겠네요. 떠나간 그대가 전하는 선물일 수도요. 이 시의 제목「영원한 나라에서」는 죽음까지 껴안은 자연의 생명을 노래합니다. 생명을 담은 봄의 열매에서 시인은 이별을 초극한 아름다운 “그대”를 봅니다.

김안녕 시인의 세 번째 시집『사랑의 근력』(걷는사람, 2021)은 부드럽지만 눈물겨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어떤 암흑 속에서도 / 결코 신으로부터 구원받지 않겠어,”(「시의 맛」)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시인에게 ‘시’는 천형(天刑)일까요? 황홀일까요?

 

/강경희 문학평론가 · 갤러리지지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