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고영민 _ 통증 본문

꽃처럼 아픈 詩

고영민 _ 통증

수평선다방의 시 2012. 12. 6. 17:39

 

 

 

       통증

 

                           고 영 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