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임성용 _ 흘림 본문

꽃처럼 아픈 詩

임성용 _ 흘림

수평선다방의 시 2010. 1. 8. 09:49

 

 

      흘림

 

                   임 성 용

 

가락시장 공중화장실에 적힌 안내문,

 

수도 동파 방지용 물 흘림 중입니다!

 

변기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물줄기

겨울 내내 수도가 얼어 터지는 걸 막아내려고

밤낮으로 안간힘을 썼다

내 늘어진 꼭지에서도 줄줄

아직 동파되지 않은 물이 흘러나오는데

자나 깨나 오름 저린 기운이 몸서리치는데

샌다, 잠가도 잠기지 않는 고장 난 밸브처럼

가늘게 새는 것들 넘치는 것들 모이고 모여

바짓가랑이에 끈끈한 흔적을 남긴다

 

시장 난전 흙바람은 회오리쳐 불어오는 중

쓰레기 더미 고양이들은 먹이를 구하는 중

화물차는 뜨거운 엔진을 풀고 짐을 내리는 중

하역노조 사내들은 비틀비틀 술을 마시는 중

장사꾼들은 싸우고 소리치고 뛰어가는 중

소방차는 정신없이 달려가고 사이렌을 울리는 중

무료급식소 노숙자들은 국밥을 먹는 중

부스러기 햇살은 빛나는 중

단 일 분 일 초의 정지도 없이 상념도 없이

나는 열심히 숨을 쉬고 있는 중

흐르고 흘러 콸콸 치솟아 오를 때까지

모두가 지금, 흘림 중이다.

 

(『리얼리스트』 창간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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