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허수경 _ 수수께끼 본문

꽃처럼 아픈 詩

허수경 _ 수수께끼

수평선다방의 시 2014. 10. 28. 12:04

 

 

    수수께끼

 

                        허 수 경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순이 잊어버린 눈[雪]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꽃처럼 아픈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중일 _ 사랑이라는 상실  (0) 2015.01.16
주하림 _ 작별  (0) 2014.11.19
김경미 _ 수첩  (0) 2014.10.17
이영주 _ 셀프 빨래방  (0) 2014.10.17
박서영 _ 눈사람의 봄날  (0) 2014.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