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이영주 _ 셀프 빨래방 본문

꽃처럼 아픈 詩

이영주 _ 셀프 빨래방

수평선다방의 시 2014. 10. 17. 16:41

 

 

      셀프 빨래방

 

                                      이 영 주

 

  빨래를 걷고 개고 창문을 닫는 너의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다른 행성으로 건너가다가 미끄러진 꿈 새벽에는 미열에 시달리고 답답하고 외롭다는 너의 중얼거림이 멍청해서 세탁기를 돌립니다 금속성의 소리는 왜 이렇게 매혹적일까요 쇠냄새 나는 새벽 홀로 잠든 그림자를 만져봅니다 흠뻑 젖어 있습니다 가짜 털은 너무 춥지 짐승을 잘 찢어야만 따뜻해진다니 우리 사이가 너무 내밀하면 죽음과 가까워져 이 새벽을 얼마나 더 침묵에 담가야 그 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빛의 파편이 흩어진 꿈 미끄러질 때마다 야행 짐승처럼 이가 자랍니다 멍청하게 외로울 때면 킁킁대는 그림자 어느 과학자는 죽음이란 시관과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낯선 행성에서 너는 아주 오래전부터 납작해져 있었다는 걸 이렇게 네가 버린 시간과 공간 안에서 꿀 같은 대화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너는 슬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고, 그림자는 슬픈 이야기만 하고 싶어서 우리는 매일 매일 빨래를 돌립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털을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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