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최갑수,『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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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수평선다방의 시 2009. 9. 21. 15:59

 

 

 

  # 흘러든 여관

 

여관방에는 참 많은 얼룩이 있구나.

이 얼룩들은 연못처럼 깊고 깊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얼룩들은 이 방에서 아팠던, 슬펐던, 외로웠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자국일런가.

집으로 가지 못한 아득한 영혼일런가.

그래서 눈물처럼 그렁대며 맺혀 있는 것일런가.

(...중략...)

김 빠진 맥주를 마저 비우고 집으로 간다.

잠시 산보 나왔다고 생각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죄를 솎아내고 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바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장엄하게 슬펐던 거야.

 

- 최갑수,『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