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송경동 _ 말더듬이 본문

꽃처럼 아픈 詩

송경동 _ 말더듬이

수평선다방의 시 2016. 3. 10. 14:38

 

 

    말더듬이

 

                       송 경 동


어려선 말더듬이었다
조금만 더 세상으로 나오렴
짧은 혀뿌리를 물고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너도 저 바닷가 몽돌들처럼 잘 구를 수 있을 거야
르, 르, 르 둥글게 만 혀를
수천번 굴리다보면 어느덧 둥근 저물녘


그 짧은 혀가 내 영혼의 작은 키였다
모든 위풍당당한 지배와 폭력과 선지의 언어들을
그 음운의 끝까지 거부하는 힘을 배웠다
번지르르한 말을 경계하고
세상엔 말하지 못한 슬픔들이
오지 않은 말들이 더 많다는 걸 배웠다


지금도 혼자 있을 때면
아름다운 말들을 연습하는 나를 본다
‘안녕’ 이라는 인사를
가장 많이 해보고 싶었다
더듬거리느라 하지 못한 말들이 아직도 많아
지칠 틈 없이 행복하다

'꽃처럼 아픈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니 _ 마지막은 왼손으로  (0) 2016.04.02
성동혁 _ 1226456  (0) 2016.03.16
김영식 _ 물가자미 책  (0) 2016.03.09
박시하 _ 보드카 레인  (0) 2016.02.26
장정일 _ 호두 한 알  (0) 201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