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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다방의 빨간 詩
‘타인’이라는 우주를 만나는 하나의 방법 본문
‘타인’이라는 우주를 만나는
하나의 방법
김 은 경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뉴욕에 자리를 잡은 어느 화가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천사와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었다. 연금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내면에 온 우주를
담고 있으므로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런데 내 말의 요점을 짚어줄 적절한 비유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화가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스튜디오 창밖을 보라고 말했다.
"무엇이 보입니까?"
그가 물었다.
"그리니치빌리지 거리요."
몇몇이 대답했다.
화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종이 한 장을 창유리에
붙였다. 그리고 주머니 칼로 그 위에 작고 네모난
구멍을 냈다.
"자, 이제 무엇이 보일까요?"
"같은 거리겠죠."
누군가 대답했다.
화가는 종이에 여러 개의 네모난 구멍을 뚫더니 말했다.
"여기 이 작은 네모난 구멍들이 거리를 담고 있듯, 우리
각자도 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정곡을 찌르는 그 비유에
박수를 보냈다.
-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서
책을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밑줄을 긋거나 이리저리 책장을 접었다 폈다 보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 이런 습관이 그리 특이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건마는, 남편은 나와 정반대의 습관을 지니고 있어서 연애 초기 시절 한동안 의아해 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 것은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 밑줄을 그을 때면 괜히 내 마음에도 어떤 점 하나, 선 하나가 경쾌하게 그어지는 느낌이 든달까.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무심코 넘길 때 발견하는 나의 흔적들 속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읽는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쩌면 그것은 미래의 나에게로 보낸 타임캡슐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도 나는 여행하는 유성용 씨가 쓴 『여행생활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머나먼 설산과 거센 바람, 그리고 배고픔과 고독을 식구처럼 껴안고 산 그의 여행에 동화되어 위무 받았고,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나와 비슷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이 읽는 책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곤 한다. 책장 사이에 엽서나 쪽지, 나뭇잎이나 꽃잎, 극장 티켓을 끼워 두기도 하고, 책장의 한 귀퉁이에 짧거나 긴 어떤 문장을 남겨놓기도 한다. 책의 구석구석에 새겨 넣은 문장이 일기보다 더 진솔하게 읽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작심하고 썼다기보다 거의 우연의 산물이고, 또 책을 읽기 전후의 감상이 휘발성 없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에 그러하다.
또, 오래전 읽은 책을 꺼내다 발견한 글귀들은 대개 누가 썼는지 모를 만큼 낯설거나 때로 당혹스럽기까지 할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 오래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자신 사이에는 그만큼의 간격이 있으므로.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마모시키거나 변화시키거나 단련시키거나 또는 무모하게 만드는 데 꾸준히 열중하고 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일수록 아껴 먹고, 어떤 사람은 그 음식이 행여나 식을 새라 단번에 통째로 음미의 시간을 즐긴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참 다양한 취향들이 존재한다. 좋은 책일수록 밑줄, 메모 등의 다양한 애정공세(?)를 바치는 나 같은 독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독자는 그 애정을 홀로 적요로이 머리와 마음으로만 간직하면서 자신이 아끼는 책을 원본 그대로 두는 것을 최대의 찬사로 바치곤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취향만이 올바르며 당연하다고 믿는 편견이요 오만일 뿐. 그런 불순한 잣대 때문에 곤혹을 치르거나 갈등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죽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며, 어느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멸시 혹은 긍휼의 시선을 던지곤 한다. 더 나아가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서로 멸시하며 헐뜯기 일쑤다. 뿐만 아니다. 채식과 육식 사이에서,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서, 좌편향인가 우편향인가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옥신각신, 줄을 당기며 살고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채식주의자 인구가 꽤 늘어났는데, 친구 하나가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채식을 해오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그녀를 만날 때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한번 더 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그녀 역시 육식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내게 채식을 강요한 적 없다. 우리는 언제나 둘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식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서 최상의 식단을 찾아내고 있으며, 그런 과정은 좋은 영화를 고르는 일, 어떤 전시회를 갈까 고민하는 일만큼이나 설레는 시간에 속한다.
안팎으로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견고한 성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성이 좀더 아름답고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바라며, 그 성 안에 아무나 멋대로 침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사람들은 그 성에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를 초대하기 원하며, 그와 함께 만찬을 즐기거나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관계하고 싶어 한다. 시간과 추억을 나누고자 하며, 상호작용을 맺고 싶어 한다.
동족끼리만 소통한다면, 같은 종교인끼리만,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끼리만 관계를 맺는다면, 한 가지 색깔의 음악과 영화만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인가. 우리는 수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차를 마실지, 어떤 운동을 할지, 어떤 책을 읽을지는 취향의 문제일 뿐 절대적 선(善)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고, 부모 형제들이라 할지라도 취향에 대해 참견할 자격은 없다.
앞서 언급한 파울로 코엘료의 글에서처럼,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하나의 우주요 세계이다. 나와는 다른 그의 취향을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바라보기. 그것은 ‘타인’이라는 한 우주를 만나는 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이 아닐까.
(2008.12 <<해인>>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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