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아픈 詩

황유원 _ 유리잔 영혼

수평선다방의 시 2024. 10. 24. 15:18

유리잔 영혼

 

                     황 유 원

 

실수로 건드린 유리잔이 울린다

순간 영혼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느낌으로

 

유리잔에 영혼 같은 건 없겠지만

영혼을 믿는 사람이 지나가다 들으면 잠시

멈춰 서서

성호를 그을 것만 같은 마음으로

 

잠시 공중이

고요해진다

 

유리잔에 대고 후우- 분

입김처럼

고요가 공중에 퍼졌다

사라져

 

공중은 원래 투명한 것이지만

실수로 건드린 유리잔이 울리지 않으면 우린 그게

투명한 줄도 모르고

 

오직 실수를 통해서만 영혼 같은 것은

잠시나마 생겨날 수 있다는 듯

우린 자꾸만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어느 날 실수로 창밖에 내놓은 유리잔에는

흰 눈이 가득 쌓인 채

천천히

녹아가고 있었다

 

퍼붓던 눈이

비로소 한잔의 물로

고요해져 있었다

 

(『하얀 사슴 연못 , 창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