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아픈 詩

이성미 _ 나는 쓴다

수평선다방의 시 2010. 4. 27. 21:11

 

 

     나는 쓴다

 

                            이 성 미

 

물고기의 싱싱한 시체를

잎사귀에서 물방울이 증발한 흔적을

증기를 내뿜는

화물기차의 검은 몸체를

 

수챗구멍에 엉켜 있는

늙은 남녀의 잿빛 머리카락을

쓰레기차에

내려앉은 환한 눈더미를

보도블록 틈

손가락만한 물웅덩이에

고인 달을

 

선호하는 콤플렉스의 목록을 작성하며

병원 수세식 변기 속

물에서 꼬물거리는 벌레 같은

 

서른다섯

죽기엔 너무 늦었고

내년 가을에도

황금빛 이파리들이 조용히 떨어질 것이므로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문학과 지성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