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詩

전설이 될 모래강에게

수평선다방의 시 2015. 10. 20. 15:25

   전설이 될 모래강*에게

 

                                      김 은 경

 

포클레인이 사정없이 강의 목을 졸라도

내 몸속 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코 피 흘리지 않을 게다

 

물고기가 죽어가고

수달이 떠나도

지구는 안온할 것이다

나의 아침 밥상도

 

꽃이 없다고

봄이 없나

모래가 없다고

강변 서정이 없나

 

사람들은 회자할 뿐

옛날에

모래라는 작은 아이가 있었지

 

모래는 자유

모래는 방랑

모래는 귀래(歸來)

모래는 숨비소리

모래는 물푸레나무

모래는 가장 가벼운 영혼

 

,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

 

20년 후 아니 10년 후

아이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래의

전설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때에도

교배한 별빛과

기이하게도 노랑을 뺀 달맞이꽃과

시멘트로 미끈하게 덮은 강이

유유히 흘러갈 것을 믿는다

 

 

      * 내성천. 낙동강의 제1지류로, 경북 봉화와 예천을 거쳐 흐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이다.

 

(시집 <불량 젤리>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