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숙 _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정 영 숙
논두렁에는 아직도 추수한 나락의 낟알들이
퇴락하는 가을빛을 업고 함께 뒹굴고
감나무에는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감들이
붉게 단장한 얼굴로 우듬지에 매달려 있고
개울가에는 아직도 여름 아이들과 놀고 싶은
밤게들이 바위 틈에 서늘한 얼굴 삐죽이 내미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그대 내게 무심히 뱉은 사랑한다는 말의 속알갱이
어느 얄궂은 새 날아와 물고 갔는지 보이지 않고
빈 쭉정이 아직도 허허 벌판에 싸락눈으로 날려
내 눈자위 붉은 단풍빛으로 물드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아직도 그대 따사한 체온
아침에 갓 꺼내온 실핏줄 어린 계란에 남아 있고
아직도 그대 가녀린 속삭임
빨랫줄에 쪼르르 앉아 있는 참새의 여린 깃털 속에 파닥이고
가을밭에 널부러진 서리 앉아 새하얀 배추 꼬갱이 속에
아직도 그대 뿌우연 새벽 입김 서려 있어
내 흐린 눈썹 엷은 덤불빛으로 떨리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토벽에는 푸른 영닢 단 무우 시래기
아직도 서늘한 햇빛 속 새록새록 초록눈 뜨고
푸르던 날 웅얼거리고 있으니
우리 함께 알몸으로 쬐었던 뜨거웠던 태양을 잊은 게 아니다
11월은 아직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타다 남은 사랑의 불씨 다시금 잉걸불로 피어오르는 것을
* 인디언들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