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아픈 詩
박강 _ 봄날은 간다
수평선다방의 시
2013. 11. 27. 16:46
봄날은 간다
박 강
날씨 좋은 날에 우리는 날씨를 탓하는 욕망을 가졌습니다 빵 봉지 속에선 겨울잠을 자던 곰팡이가 깨어나고 변성하는 목소리로 꽃봉오리가 마른기침을 뱉던 날들 부화를 꿈꾼 새들에게 우리는 어쩌면 변덕스런 봄기운이 몰아닥칠 거라고 공복 시의 몇몇 생존법을 적어두었습니다 붉은 새들의 동공에 봄 아지랑이가 어지럽게 피어오릅니다 먼저 강바닥이 마르면 한결 벌레들을 잡아먹기가 쉬워지겠지요 그건 긍정의 힘입니다 라고 애꾸눈의 선생이 외쳤지만 우리는 우리의 남은 한쪽 눈을 찌를 수 있는 신화 속 왕을 추대하며 긴긴 겨울밤을 버텼습니다 여차하면 우리는 맹인이 될 수 있고 쩍쩍 갈라진 강바닥을 지팡이 없이 기고 건너며 날씨를 탓하는 욕망을 노래할지 모릅니다 손 하나를 잘라서 광장에 걸어두고 남은 손으로 짧아지는 밤마다 자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위독한 자들은 아침저녁으로 속옷을 갈아입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명함을 파종하듯 뿌려댑니다 잡초가 자랍니다 제초제를 실은 비행기가 시동을 겁니다 그걸 모르지 않지만 우리도 눈에는 눈의 심정으로 두 눈을 감고 나무뿌리가 자라나는 방향을 손금에 새길 수 있습니다 손에 못을 뚫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오면 실개천에 우리의 피를 먹고 자란 철쭉이 피어나겠지요 그렇게 봄날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