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아픈 詩

이승희 _ 붉다

수평선다방의 시 2013. 8. 16. 16:29

 

 

     붉다

 

                   이 승 희

 

정육점에 간다

머리 풀고

슬리퍼 끌고

속옷과 겉옷이 가끔씩 뒤바뀐 걸음으로

초원이 아닌 골목을 거슬러

강물이 아닌 슈퍼를 지나

정육점에 간다

 

저항을 포기한 지 오래

붉은 살코기들이

바닥을 향해 매달린

피 흐르지 않는 삶을

피 흐르지 않는 삶이

두리번거린다

 

고기 속으로 칼을 푹 찔러넣던 날들 있었나

날카로운 이빨로

제 살이라도 물어뜯어야 살 것 같은 날들 있었나

예쁘기도 하지

도살의 흔적

싱싱하기도 한

저 허구적인 불빛

 

붉다

붉어서 눈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