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아픈 詩
박성준 _ 삭
수평선다방의 시
2012. 10. 30. 14:36
삭
박 성 준
애인의 아이를 지우고 건너온 밤
도무지 어디가 아픈 줄을 몰라서 울음이 났다
그토록 발작하던 햇빛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모두 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저녁
책가방 대신 애인을 업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빠져나간 것이 있다는데 더 무거워진 애인
그 중력이 싫었다
가슴팍에 돌돌 말린 우주야
한 근 떼 온 소고기가 손끝에서 잘랑거리는
거추장스러운 중력이 싫었다
핏물이 다 빠지지 않은 소고기에 미역을 둥글게 풀며
지구가 자꾸 돈다는 게 갑자기 느껴졌지만
다 기분 탓이라고, 아랫배를 쥐고, 자꾸 나오지 않는 오줌을 싸겠다
애쓰는 애인에게 나는 느닷없이 화를 낸다
다 기분 탓이라고
애인은 내 화를 다 받아주면서 짜증 대신
화장실 문을 닫는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변기에서 물이 흘렀으면 좋겠다
어딜까 지도에도 없는 그 땅
나는 그날 애인 대신 밤새 오줌을 쌌더랬는데
가고 싶다는 곳으로 좌표를 찍으며
그토록 꿈을 꾸고 싶었다
우리가 서로를 꼭 안고 달로 가는 꿈
6분의 1만큼 줄어든 통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먼 우주에서 온 것 같은 초음파 사진을 만지며
애인은 속삭였다
나는 하나도 아픈 곳이 없었다
노란 달이 다 빠져나가도록 지구와 달이 서로를 외면하면서
사진 속에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