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우리 모두에게는 간호가 필요하다
가을, 우리 모두에게는 간호가 필요하다
김은경
#1
언젠가 광화문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토요일 정오를 이미 지난 시각이었는데, 역내엔 아직도 노숙의 잠을 청하는 사람 몇이 고사목처럼 누워 있었다. 먹다 남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팔자로 뻗은 다리 밑에 놓여 있고, 어떤 남자는 신문을 덮은 채였다. 죽음도 비껴난 것처럼 정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만약 어릴 때의 나였더라면 겁을 잔뜩 먹은 채 허겁지겁 그곳을 지나쳐 왔을 거다. 그런데 두 명의 남자를 지나쳐 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는 거다.
‘잠이야말로 세계의 인종에게 가장 공평한 것이 아닐까. 계급과 신분, 유산과 무산, 남과 여,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잠’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가장 공평하게 내려지는 생리적 욕구의 해소가 아닐까.’
잠자리야 처지에 따라 조금 불편하거나 부족할 수도 있고, 그 질적 수준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테지만 ‘거리의 잠’이 고관대작의 잠에 비해 덜 달콤하다거나 덜 행복하다고는 섣불리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오히려 나는 모든 것을 가진 듯하면서도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면제를 복용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흔하게 목격하곤 한다. 그리고 늘 잠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사람, 편한 잠을 자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걸 보곤 한다. 나 역시,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젠 어찌나 피곤했는지 저녁 7시에 잠들었다. 그리고 꼬박 12시간가량을 잠에 빠져 있었다. 일어나니 월요일 오전 6시 35분. 그렇게 많은 잠을 자고 나서도 내 몸은 왜 빨래한 것처럼, 밤을 통과한 새벽처럼 개운해지지 않는 걸까. 뭔가 찜찜하고 불편한 기운은 뭘까. 아직도 내 몸 안에 잔뜩 먼지가 쌓인 듯한 이 기분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길을 걷다 한 번쯤, 노숙의 잠을 자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지난 밤은 안녕하셨습니까? 좋은 잠을 청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사는 일이 언제쯤 피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덜 피곤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질문으로써 구할 수 있는 답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2
누구나 한 번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마주쳤을 법한 또 다른 풍경 하나.
세 살쯤 되었을까. 다 큰 아기를 업은 삼십대의 엄마가 지하철을 누비며 껌을 팔고 있었다.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고, 생계가 막막한 여자는 껌을 팔아 생활비를 번다는 내용이 적힌 종잇장이 사람들의 무릎 위에 놓여졌다. 포대기 안의 업둥이는 훗날 저의 유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나는 그 미래가 더 끔찍해져 두 눈을 끔벅끔벅, 했다.
우산을 팔고, 등산장갑을 팔고, 걸레를 팔고, 껌을 팔고, 한물 간 팝송 CD를 팔며 오가는 숱한 군상. 그러다 또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또 어떤 가련한 생활을 팔려고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거지?
그날따라 비는 퍼붓는데, 우울하고 씁쓸한 생각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였다. 줄곧 을씨년스런 날씨. 빗줄기마저 그런 나를 등 떠미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직장으로부터, 집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몽골의 어느 벌판에 가면 ‘나는 목이 마르다’라는 간판을 단 술집이 있다는데, 거기나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았다. 돌고 도는 2호선 전철에 내내 앉아서 미처 가보지 못한 대륙을 횡단하는 꿈만 꾸었다. 그렇게 나는 그 해 가을을 지독히 앓고 있었나 보다.
#3
하루는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이었는데 대학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술을 한두 잔쯤 마신 그는 삶이 외롭다고 했다.
나는 대뜸 “언제부터요?”라고 물었다.
선배는 “음, 37년 전부터…”라고 답한다.
소설가 박민규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고,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한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문자로 다시 선배에게 답했다.
“선배에게 간호가 필요한 가을이구나”라고….
우리 모두에게는 간호가 필요하다. 사랑이 더더욱 필요한 가을이다. 2011년 10월, 바로 지금.
(새마을금고 사보. 201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