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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 _ 길고양이

수평선다방의 시 2012. 5. 22. 14:28

 

 

 

 

길고양이

 

구조된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 기른 적이 있다. 처음 며칠은 침대 밑에서만 숨어 지내더니 이내 독립성이 강한 녀석답게 방안을 활보했는데 그 모습이 퍽 우아하게 여겨졌다.

외출했다 돌아와 난장판이 된 방을 치우며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란, 그게 설령 짐승일지라도 이처럼 사소한 사연들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와 더불어 사는 시간은 평화로웠다. 녀석은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내가 녀석의 말을, 녀석이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는 이동장에 넣어 함께 갔다. 마침 우리 집 거실에 모였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고개를 쑥 내밀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가르릉대던 녀석이야말로 내가 부러워마지 않는 팔자 그대로였다. 물론 어머니는 저렇게 고양이를 껴안고 사니 장가들 생각이 있겠냐며 타박을 했는데 나중에 녀석이 내게서 탈출한 뒤로 눈물부터 비친 이가 바로 당신이었다.

녀석을 영영 잃어버리기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다. 그때마다 나는 골목을 돌아다니며 녀석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그러다 귀기울이면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가느다란 울음이 들려왔다. 어느 구석에 웅크린 녀석을 찾아내 품에 안으면 품속 가득 두려움과 기쁨이 섞인 떨림이 채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존재는 공포를 느낀다.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길 바라며 그 부름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양이를 잃은 뒤로 나는 고요한 밤마다 귀기울인다. 이제는 누군가 나를 불러주길 간절히 기다린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내가 떠나온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 손홍규의 로그인, 경향신문, 2011. 5. 13